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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건 목사 / 빛교회 담임, 조직신학, Ph. D.
 

대학 졸업 후 논산훈련소로 가기 위해 용산에서 홀로 군대 열차에 앉아 있을 때, 신앙의 동료(현재 송영선 목사}가 다가와서, 시편 121편을 펼쳐 주었다. 군대 가기 전, 가까운 친척 중 한 사람이 군대 입대 후 군대 내에서 구타로 생명을 잃었던 소식을 들었던 차, 내심 두려워하고 있었다.
 

신약과 시편이 담긴 조그만 가죽 성경을 품에 안고 군대 생활을 시작했다. 훈련 시간 틈틈이 성경을 읽는 것이 유일한 위로였다. 얼마나 자주 읽었는지, 성경이 새카맣게 더러워졌다. 그 당시 군대 생활은 참으로 험하고 폭력적이었다.
 

그런데 그 힘들고 괴로운 날들 속에서, 특이한 경험을 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역사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는 말씀으로 마음에 다가왔다. 5월 무더위 속에서 연병장에서 구르고 흙먼지 속에서 험한 훈련을 받을 때, 왜 이 세상에 심판이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우리기 무심코 밟고 지나가는 이 땅에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눈물과 피를 흘렸는지 생각하게 되었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이 세상을 심판하심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나의 신앙 여정에서 하나님이 살아 계심이 그렇게 가까이 느껴졌던 때가 달리 없었다. 틈틈이 성경을 읽었고, 그 시절 유일한 위로가 성경을 통해 다가왔다. 그렇게 훈련 기간이 끝나고 의정부로 호송되는 날, 열을 맞추어 군가를 부르고 행진할 때, 나는 군가 대신 "오 신실하신 주 내 아버지여"를 눈물 속에 부르면서 논산을 떠나왔다. 오래 전 이야기인데 아직도 마음에 생생히 기억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대부분 위기 속에서 살아 있는 말씀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성경이 원래 환난과 핍박 속에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로하고 바르게 세우기 위해 주어지지 않았던가? 그 까닭인지, 똑같은 성경도,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더 가까이, 살아 있는 말씀으로 다가오는 것을 경험한다.
 

기합과 혹독함의 시절에 위로가 되고 힘이 된 말씀이 바로 시편 121편 4절 말씀이었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The Lord is your preserver). 그 말씀을 마음에 묵상하면서 위기의 날들을 헤쳐 살아왔다. 지난 주일에는 이 시편 말씀이 설교 본문이었다. 많은 세월이 지나서 이 말씀을 다시 묵상하게 된다.
 

세월이 바뀌고 내 삶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이 말씀은 여전히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약속이요, 소망이다. 위험과 재난이 깔린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 말씀이 살아 있어, 소망이 되고 위로가 된다.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를 지켜 주시니, 거리를 다니고 사람들 속에 살아가게 된다. 무에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자칫 무의 존재로 떨어지기 쉬운 우리를 그 말씀으로 우리를 든든히 세워 주신다.